소개
Calypso · 의학·신체· 공유받은 글

스물다섯 단어가 아이를 살렸다

1920년 10월 31일 새벽 2시, 캐나다 런던. 환자 없는 의사가 종이에 스물다섯 단어를 적었다.

↓ 스크롤
CH. 1

밴팅이 밤 2시에 메모를 적었다

1920년 10월 3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

새벽 2시, 환자 없는 진료실 2층에서 한 남자가 잠들지 못했다. 그가 종이에 스물다섯 단어를 적었다.

“개의 이자관을 묶는다. 세포가 마르고 섬만 남을 때까지 살려 둔다. 남은 분비물을 뽑아 당뇨를 덜 수 있는지 본다.”
— 밴팅의 메모(의역), 1920년 10월 31일

프레더릭 밴팅은 당뇨를 연구한 적 없는 외과 의사였다. 스물다섯 단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었을까.

CH. 2

1920년, 당뇨는 사형선고였다

굶기는 것이 치료였다

1920년, 당뇨에 걸린 아이는 대개 한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인슐린이 없던 시절, 의사가 줄 수 있는 처방은 음식을 끊는 것뿐이었다.

당뇨 아이의 하루 식사
400칼로리
미국 의사 프레더릭 앨런의 굶기는 치료. 혈당을 낮추려 하루 열량을 수백 칼로리, 때로 400칼로리 안팎까지 줄였다.

굶기는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뼈만 남았다. 굶어서 죽거나 병으로 죽거나, 끝은 둘 중 하나였다.

캐나다 런던의 개업의 프레더릭 밴팅은 이 병을 고칠 생각이 없었다. 환자가 없어 대학 강의 자리를 맡았고, 수업 준비로 이자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잠을 설쳤다.

CH. 3

밴팅이 진료실을 접고 떠났다

1921년 봄, 밴팅은 캐나다 런던의 개업을 접었다. 토론토대학교의 존 매클라우드를 찾아가 실험실을 빌려 달라고 매달렸다. 매클라우드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개 열 마리와 학생 둘을 붙여줬다.

급여도 없이 여름을 걸었다

두 학생 가운데 누가 먼저 밴팅과 일할지는 동전 던지기로 갈렸다고 전해진다. 스물두 살 의대생 찰스 베스트가 밴팅 곁에 남았다.

1921년 여름, 밴팅과 베스트는 창문도 변변찮은 실험실에서 개의 이자관을 묶었다. 제대로 된 급여도 없이, 두 사람은 여름 내내 개와 씨름했다.

가을이 오자, 이자를 들어낸 개에게 추출물을 놓았다. 치솟던 혈당이 내려갔다. 죽어야 할 개가 살아 있었다.

CH. 4

레너드 톰슨이 첫 주사를 맞았다

1922년 1월 11일, 토론토

토론토 종합병원. 열네 살 레너드 톰슨이 뼈만 남은 채 혼수로 빠져들고 있었다. 밴팅과 베스트가 만든 추출물이 처음으로 사람 몸에 들어갔다.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추출물이 덜 정제돼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혈당은 조금 떨어졌지만, 주사 자리에 고름이 잡혔다. 첫 주사는 그렇게 끝났다.

제임스 콜립이 밤낮으로 추출물을 정제했다. 열이틀 뒤, 1월 23일. 정제한 추출물을 다시 톰슨에게 놓았다.

레너드 톰슨의 혈당 (1월 23일)
520 → 120mg/dL
치명적으로 높던 혈당이 하루 만에 정상 가까이 내려갔다.

소변의 당도 71그램에서 9그램으로 떨어졌다. 죽어 가던 아이가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났다.

CH. 5

밴팅이 특허를 1달러에 팔았다

1달러

밴팅과 베스트, 콜립은 인슐린 특허를 토론토대학교에 넘겼다. 값은 1달러였다. 누구나 만들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다.

“인슐린은 내 것이 아니다. 세상의 것이다.”
— 프레더릭 밴팅 (전해지는 말)

1923년, 밴팅은 노벨상을 받았다. 상은 매클라우드와 나눠 받게 됐고, 조수 베스트가 빠진 데 화가 난 밴팅은 상금을 베스트와 반씩 나눴다.

레너드 톰슨은 열세 해를 더 살았다. 1935년, 스물일곱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밤 2시에 적힌 스물다섯 단어가, 굶어 죽던 아이들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 끝 —
카톡 한 줄

인슐린 특허가 1달러에 팔린 건, 만든 사람들이 '이건 세상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출처 (19)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