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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한국 인물· 공유받은 글

죽은 후보에게 185만 표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 수십만이 모였다. 이틀 뒤 그 사람은 열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 스크롤
CH. 1

신익희를 보러 수십만이 모였다

한강 백사장의 수십만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의 연설을 들으러 사람들이 백사장을 가득 메웠다. 열흘 뒤가 대통령 선거였다.

1956.5.3 한강 백사장 유세
40만명
자료에 따라 20만~40만. 서울 유세 한 번에 모인 인파

정권이 바뀐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신익희가 이긴다고들 했다.

이틀 뒤 새벽, 신익희는 서울로 돌아오지 못했다.

CH. 2

신익희는 갈아보자고 외쳤다

못 살겠다

전쟁이 끝난 지 3년째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고, 이승만의 자유당은 8년째 정권을 쥐고 있었다.

1956년 봄,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로 신익희를, 부통령 후보로 장면을 내세웠다. 상대는 이승만과 이기붕이었다.

신익희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일했고, 해방 뒤 제헌국회 부의장과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야당의 얼굴이 될 무게가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 1956년 민주당 대선 구호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로 맞받았다. 하지만 거리에서 더 크게 번진 쪽은 '갈아보자'였다.

CH. 3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에 올랐다

쉬지 않은 유세

5월 3일 서울 유세는 대성공이었다. 백사장을 메운 인파는 이미 승부가 기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신익희는 서울 유세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남쪽 차례였다. 다음 유세지는 전주였다.

5월 4일 밤, 신익희는 호남선 야간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어둠 속을 남으로 달렸다.

열차에 오른 날
선거 D-11
신익희는 쉬지 않고 다음 유세지로 향했다
CH. 4

죽은 이름이 185만 표에 적혔다

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5월 5일 새벽, 이리(지금의 익산)에 닿기 전 열차 안에서 신익희가 쓰러졌다. 뇌일혈이었다. 전주에 닿기 전에 숨을 거뒀다.

선거는 열흘 뒤 예정대로 치러졌다. 야당 후보가 없는 선거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정해진 일이 됐다.

그런데 개표함을 열자 이상한 숫자가 나왔다. 누구에게도 유효하지 않은 표, 죽은 신익희의 이름을 적어 넣은 표가 쏟아졌다.

1956 대선 무효표
1,856,818표
전체 투표의 약 20%. 죽은 후보에게 던진 추모표

이길 사람은 사라졌는데, 신익희를 찍겠다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CH. 5

신익희는 호남선 노래로 남았다

비 내리는 호남선

1956년,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유행가가 세상에 나왔다. 원래는 이별을 노래한 곡이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 1956년 유행가 — 신익희가 숨을 거둔 그 노선의 이름

하지만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에서 죽고 나자, 사람들은 '비 내리는 호남선'을 신익희를 보내는 노래로 불렀다. 서울역에서도, 지방 정거장에서도 흘러나왔다.

185만 장의 표와 한 곡의 유행가. 1956년 봄, 한 표도 얻지 못한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됐다.

— 끝 —
카톡 한 줄

1956년 대선, 죽은 후보에게 185만 표가 간 건 표가 사람이 아니라 '못 살겠다'는 마음에 찍혔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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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