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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의학·신체· 공유받은 글

멀쩡한 요리사가 장티푸스를 옮겼다

1907년 3월, 뉴욕. 위생기사가 한 요리사의 집 문을 두드렸다. 정작 그 요리사는 한 번도 앓은 적이 없었다.

↓ 스크롤
CH. 1

요리사는 자신이 멀쩡하다고 믿었다

1907년 3월, 뉴욕

위생기사 조지 소퍼가 파크 애비뉴의 한 저택 문을 두드렸다. 안에는 요리사 메리 맬런이 있었다. 그녀가 거쳐 간 부엌마다 장티푸스가 돌았다.

이상한 건 메리 자신이었다. 메리는 장티푸스를 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병을 나르는 사람인데, 정작 장티푸스를 앓지 않았다.

메리 맬런
한 번도 앓지 않음
메리가 요리한 부엌
장티푸스 발병
CH. 2

메리는 부잣집 요리사로 살았다

1883년, 아일랜드에서 온 소녀

메리 맬런은 1883년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열다섯 살 무렵이었다. 1897년부터 뉴욕의 부잣집을 옮겨 다니며 요리를 했다.

당시 장티푸스는 항생제도 없이 사람을 잡던 열병이었다.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퍼졌고, 요리사의 부엌은 병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1906년 여름,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은행가 찰스 워런이 빌린 여름 별장에서 8월 27일 딸이 쓰러졌다. 열한 식구 중 여섯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부잣집이 물 좋은 피서지에서 열병에 걸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집주인은 위생기사 조지 소퍼를 불렀다. 소퍼는 메리가 일한 집 여덟 곳을 지도에 그렸다. 그러자 한 가지가 보였다.

메리가 거쳐 간 집
8곳 중 7곳
장티푸스 발병
CH. 3

메리는 이름을 바꾸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1907년, 고기 써는 포크

1907년 3월, 소퍼가 메리를 찾아가 검사할 표본을 달라고 했다. 메리는 자신이 병을 옮긴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생 앓은 적이 없는 몸이었으니까.

“메리가 고기 써는 포크를 집어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 조지 소퍼, 조사 기록

1907년 3월 20일, 보건의 세라 조지핀 베이커가 경찰과 함께 왔다. 메리는 헛간에 숨었다가 끌려 나왔다. 결국 노스브라더섬의 격리병원에 갇혔다.

1910년 2월 19일, 보건국은 조건을 걸고 메리를 풀어줬다.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메리는 요리 말고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다. 이름을 메리 브라운으로 바꾸고, 다시 남의 집 부엌으로 돌아갔다.

CH. 4

메리의 쓸개에 균이 살고 있었다

1915년, 산부인과 병원

1915년, 뉴욕 슬론 산부인과 병원에서 장티푸스가 번졌다. 스물다섯 명이 걸렸고 두 명이 숨졌다. 부엌에는 메리 브라운이라는 요리사가 있었다.

보건국이 요리사의 뒤를 밟았다. 메리 브라운은 메리 맬런이었다.

의사들이 오래 찾던 답은 메리의 몸 안에 있었다. 장티푸스균이 메리의 쓸개에 자리 잡고 살았다. 몸은 멀쩡한데 균은 계속 밖으로 나왔다.

메리가 느낀 몸
평생 건강함
쓸개 속
장티푸스균

메리는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끝까지 거부했다. 자신이 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리 맬런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건강한 보균자'였다.

CH. 5

메리는 섬에서 23년을 보냈다

노스브라더섬, 마지막 방

메리 맬런은 노스브라더섬으로 돌아가 23년을 더 살았다. 1938년 11월 11일, 메리 맬런은 섬에서 눈을 감았다.

메리 맬런에게 이어진 장티푸스
57건까지 · 3명 사망
메리 본인은 무증상

사람들은 오래 '장티푸스 메리'라는 이름만 기억했다. 멀쩡한 몸도 병을 나를 수 있다는 걸, 미국이 처음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 메리 맬런이었다.

— 끝 —
카톡 한 줄

멀쩡한 몸도 병을 나른다는 걸 미국이 처음 두 눈으로 확인한 게, 요리사 한 명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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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