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세계사 한국인 모름· 공유받은 글

미군 헬기가 미군에게 총을 겨눴다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미라이. 헬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조종사가 자기 편에게 총구를 돌렸다.

↓ 스크롤
CH. 1

헬기가 두 편 사이에 내렸다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미군 정찰 헬기 한 대가 베트남 미라이 마을 위를 낮게 돌고 있었다. 조종사가 아래에서 본 것은 논에 쓰러진 시신들이었다. 총을 든 적이 아니라, 노인과 아이였다.

헬기가 땅에 내렸다. 미군 병사들과, 벙커로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 사이였다.

헬기에 탄 사수 두 명이 총구를 돌렸다. 마을 사람이 아니라, 미군 병사들 쪽으로.

CH. 2

톰슨은 적을 찾고 있었다

스물넷의 준위, 휴 톰슨

1968년,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전쟁이 되어 있었다. 남베트남 꽝응아이성의 미라이는 적 게릴라의 근거지로 지목된 마을이었다. 미군은 소탕 작전을 위해 미라이에 들어갔다.

1968년 3월 16일 아침, 준위 휴 톰슨은 정찰 헬기 OH-23 을 몰고 있었다. 사수 로렌스 콜번과 정비사 글렌 안드레오타가 함께 탔다. 임무는 단순했다. 지상 부대를 위해 적을 찾아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톰슨의 눈에 들어온 건 적이 아니었다. 논과 도랑에 민간인 시신이 널려 있었다. 무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톰슨은 헬기를 몇 번이고 되돌렸다. 볼수록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필요 없는 살상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 톰슨이 무전에 남긴 보고
CH. 3

톰슨이 두 편 사이에 헬기를 내렸다

돌아갈 수 없는 착륙

톰슨이 처음 헬기를 내린 곳은 시신이 쌓인 도랑 옆이었다. 톰슨은 지휘하던 윌리엄 캘리 중위에게 살상을 멈추라 요구했다. 캘리는 거부했다.

다시 날아오른 톰슨의 눈에, 벙커로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 쪽으로 다가서는 병사들이 보였다. 톰슨은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헬기를 내려앉혔다. 폭 몇 미터의 땅이었다.

톰슨은 헬기에서 내려 병사들에게 걸어갔다. 헬기에 남은 콜번과 안드레오타에게, 톰슨은 한 가지를 명령해 두었다.

“저 병사들이 마을 사람을 쏘려 하거든, 저 병사들을 쏴라.”
— 톰슨이 두 사수에게 내린 명령
CH. 4

톰슨은 열한 명을 구했고, 배신자가 되었다

구한 사람과, 돌아온 것

톰슨은 벙커 안에 숨은 마을 사람들을 달래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무전으로 부른 수송 헬기가 마을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톰슨이 벙커에서 데리고 나온 마을 사람
11명
시신 100여 구가 쌓인 도랑 옆에서

안드레오타는 시신 100여 구가 쌓인 도랑에서 살아 있는 소년 하나를 끌어올렸다. 톰슨은 소년을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기지로 돌아온 톰슨은 상관에게 학살을 보고했다. 곧 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왔고, 미라이의 살육이 멈췄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온 톰슨을 기다린 건 훈장이 아니었다. 밤마다 걸려오는 살해 협박, 아침이면 현관에 놓인 죽은 짐승. 의회는 학살을 막은 톰슨을 오히려 군사재판에 세우려 했다.

CH. 5

30년 뒤, 군은 톰슨에게 훈장을 주었다

1998년, 늦은 훈장

미라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대학교수가 톰슨의 이름을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편지 쓰기는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1998년 3월, 미국 육군은 톰슨과 콜번, 그리고 이미 전사한 안드레오타에게 '솔저스 메달'을 수여했다. 적과 싸운 공로가 아니라, 적과 싸우지 않고 보여준 용기에 주는 상이었다.

미라이에서 미군의 총을 향해 총을 겨눈 세 사람은, 30년이 지나서야 미군의 훈장을 받았다.

— 끝 —
카톡 한 줄

미라이 학살을 멈춘 건 명령이 아니라, 자기 편에게 총을 겨눈 미군 조종사 한 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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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