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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면 파문, 외워서 나왔다

1770년 4월, 로마 시스티나 성당. 베끼면 파문당한다는 곡 앞에, 열네 살 소년이 앉아 있었다.

↓ 스크롤
CH. 1

성당 밖으로 못 나가던 곡이 있었다

베끼면 파문

1770년 4월, 로마 시스티나 성당. 부활절 주간의 어둠 속에서 한 곡이 울렸다. 그 곡을 열네 살 소년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성당 밖 반출·필사
금지
어기면 파문. 130여 년째 이어진 규칙이었다.

곡이 끝나고 소년이 성당 문을 나섰다. 130여 년을 버틴 규칙이 처음으로 뚫리기 직전이었다.

CH. 2

알레그리가 성당만을 위해 썼다

성당만의 곡

곡의 이름은 미제레레였다. 1630년대에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시스티나 성당을 위해 썼다.

미제레레는 오직 부활절 성주간, 촛불을 하나씩 끄는 예배에서만 울렸다. 교황청은 악보를 성당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베끼는 것도, 남에게 주는 것도 막았다.

교황청이 정식으로 내준 사본
세 부 남짓
황제와 왕, 그리고 한 수도사에게 돌아간 정도였다.

1770년, 성당 벽 안으로 열네 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다.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그대로 남는 것이었다.

CH. 3

모차르트가 숙소에서 펜을 들었다

듣고, 받아 적다

1770년 4월 11일, 성주간 수요일. 모차르트가 미제레레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여러 성부가 얽히는 긴 곡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모차르트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방금 들은 곡을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성당이 130여 년간 막아온 일이 종이 위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그 유명한 미제레레를 이미 갖고 있소. 볼프강이 받아 적었소.”
— 레오폴트 모차르트, 1770년 4월 14일 편지

며칠 뒤 성금요일, 미제레레가 다시 울렸다. 모차르트가 악보를 손에 쥔 채 한 번 더 들으며 고쳤다. 틀린 곳은 거의 없었다.

CH. 4

교황이 소년을 벌하지 않았다

벌 대신 훈장

성당 밖으로 나온 악보는 파문감이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걱정했다. 하지만 로마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소문이 교황청까지 닿았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모차르트를 불렀다. 벌하는 대신, 소년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1770년 7월, 교황이 모차르트에게 황금박차 훈장을 내렸다.

130여 년을 버틴 자물쇠는 도둑이 아니라 한 아이의 귀 때문에 열렸다. 이듬해인 1771년, 영국 음악사가 찰스 버니가 모차르트의 사본을 손에 넣어 런던에서 인쇄했다. 성당만의 곡이 처음으로 활자가 되어 세상에 퍼졌다.

그런데 오늘날 미제레레 하면 떠올리는 아찔한 고음은, 정작 모차르트가 적은 종이에 없었다. 세상을 홀린 소프라노 고음은 한참 뒤, 19세기 편집본에서 생긴 것이다. 성당이 진짜로 감춘 것은 악보가 아니라, 종이에 옮겨 담기 힘든 장식음, 부르는 법이었다.

CH. 5

미제레레는 이제 어디서나 울린다

자물쇠가 풀린 뒤

성당 밖으로 나갈 수 없던 곡은, 지금 부활절마다 세계 곳곳에서 울린다. 베끼는 것조차 금지됐던 악보를 이제 누구나 펼쳐 부른다.

130여 년의 자물쇠를 연 것은 자물쇠를 부순 도둑이 아니라, 한 번 들은 곡을 끝내 잊지 못한 열네 살이었다.

세상이 사랑하는 고음이 정작 모차르트의 종이엔 없었다는 사실은, 성당을 나온 미제레레와 성당 안의 미제레레가 똑같지는 않았음을 남긴다.

— 끝 —
카톡 한 줄

성당 밖으로 못 나가던 곡이 세상에 퍼진 건, 악보를 훔친 도둑이 아니라 한 번 듣고 못 잊은 열네 살 모차르트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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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