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서명이 없었다
1962년 10월 27일, 쿠바 앞바다 잠수함. 발사엔 세 명의 동의가 필요했다. 두 명이 손을 들었다.
발사에 세 명, 찬성은 두 명이었다
1962년 10월 27일, 쿠바 앞바다
미국 구축함 열한 척이 바다 위에서 폭뢰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수백 미터 아래, 소련 잠수함 B-59 안에서 세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발사 명령은 함장 혼자 내릴 수 없었다. 장교 세 명이 모두 동의해야 핵어뢰가 나갔다. 두 명은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B-59는 나흘째 모스크바와 끊겨 있었다
검은 토요일
1962년 10월,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가 들어섰다. 미국이 섬 둘레를 함대로 봉쇄했고,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두 주 가까이 맞서 있었다. 뒷날 사람들은 10월 27일을 '검은 토요일'이라 불렀다.
B-59는 봉쇄선을 넘어 쿠바로 향한 소련 잠수함 네 척 중 하나였다. 나흘 동안 모스크바와 무전이 끊겼다. 냉방 장치가 멈췄고 배터리는 바닥나 있었다. 잠수함 안 사람들은 바깥에서 전쟁이 터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B-59의 부함장은 서른여섯 살 바실리 아르히포프였다. 한 해 전인 1961년, 아르히포프는 원자로가 녹기 시작한 잠수함 K-19에 타고 있었다. 동료들이 방사능에 피폭돼 쓰러지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함장이 어뢰를 준비하라 했다
쇠통 속의 망치
미국 구축함이 떨어뜨린 폭뢰가 잠수함 벽 바로 옆에서 잇달아 터졌다. 뒷날 통신정보장교 바딤 오를로프는 폭뢰 소리를 '쇠통 속에 앉아 있는데 누가 밖에서 큰 망치로 통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고 적었다.
함장 발렌틴 사비츠키는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무전은 나흘째 끊겨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폭발이 멈추지 않았다. 사비츠키는 핵어뢰를 쏘라고 명령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죽겠지만, 놈들을 모두 바다에 가라앉히겠다.”
정치장교 이반 마슬렌니코프가 함장 편에 섰다. 동의는 둘이 됐다. 마지막 한 사람, 부함장 아르히포프가 고개를 저었다. 잠수함 네 척을 지휘하는 함대 참모장을 겸했기에, 아르히포프의 동의 없이는 어뢰가 나갈 수 없었다.
세상은 40년 뒤에야 알았다
발사되지 않은 어뢰
소련 잠수함은 보통 함장과 정치장교, 두 사람의 동의만으로 핵무기를 쏠 수 있었다. 그런데 B-59에는 잠수함 네 척의 함대 참모장 아르히포프가 우연히 함께 타고 있었다. 그래서 오직 B-59에서만 세 번째 동의가 필요했다.
아르히포프는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 떨어뜨린 폭뢰는 잠수함을 부수려는 게 아니라 수면으로 끌어올리려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함대는 B-59에 핵어뢰가 실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르히포프는 함장을 설득해 잠수함을 떠오르게 했다.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세계를 구했다.”
아르히포프는 1998년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를 구했다는 평가는 죽은 뒤에야 세상에 나왔다.
미래생명상은 2017년 가족에게 갔다
수면 위로
1962년 10월 27일, B-59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핵어뢰는 발사되지 않았다. 잠수함은 뱃머리를 돌려 소련으로 돌아갔다.
바실리 아르히포프는 살아 있는 동안 어떤 훈장도 받지 못했다. 2017년, 핵 위협을 줄인 사람에게 주는 미래생명상의 첫 수상자로 아르히포프의 이름이 불렸다. 상은 아르히포프의 가족이 대신 받았다.
1962년 10월 27일, 세계가 핵전쟁을 비켜난 것은 명령서 한 장이 아니라 바다 밑에서 끝내 나오지 않은 서명 한 장에 달려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핵전쟁을 막은 건 백악관이 아니라 바다 밑 잠수함의 부함장 한 명이었고, 그 사실은 40년간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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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8)
- Vasily Arkhipov — Wikipedia
- Soviet Submarines and Nuclear Torpedoes in the Cuban Missile Crisis — National Security Archive
- Soviet submarine B-59 — Wikipedia
- How 1 Russian Submarine Nearly Started World War III — The National Interest
- Vasili Arkhipov: The Soviet Officer Who Averted Nuclear War — HistoryHit
- 40 Years After Missile Crisis, Players Swap Stories in Cuba (2002 Havana conference)
- Vasili Arkhipov — EA Forum (Future of Life Award 2017, family recipients)
- 55 Years After Preventing Nuclear Attack, Arkhipov Honored With Inaugural Future of Life Award — Future of Life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