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세계사 한국인 모름· 공유받은 글

세계를 처음 돈 여자는 '장'이었다

1766년, 로슈포르. '장'이라는 하인이 세계일주 원정선에 올랐다. 그 배엔 여자가 탈 수 없었다.

↓ 스크롤
CH. 1

하인 '장'이 원정선에 올랐다

1766년, 로슈포르 항구

프랑스 세계일주 원정대의 배 에투알호에, 식물학자의 하인 '장'이 짐 상자를 지고 올랐다.

프랑스 해군은 배에 여자를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장은 여자였다.

CH. 2

제인 바레는 식물을 아는 사람이었다

배에 오르기 전

제인 바레는 1740년 프랑스 부르고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글은 거의 배우지 못했지만, 들과 숲의 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바레는 식물학자 필리베르 코메르송의 집에서 일하며 코메르송의 일을 돕는 동반자가 되었다. 코메르송은 몸이 약했고, 표본을 직접 다루는 일은 점점 바레의 몫이 되었다.

1766년, 탐험가 부갱빌이 세계일주 항해에 코메르송을 과학자로 불렀다. 몸이 성치 않은 코메르송 혼자서는 그 많은 식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풀을 아는 바레의 손이 필요했다.

항해에 허용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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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군은 배에 여자를 들이지 않았다
CH. 3

제인 바레가 가슴을 동여맸다

1766년 겨울, 로슈포르

에투알호가 떠나기 전, 제인 바레는 가슴을 아마포로 동여매고 남자 옷을 입었다. 이름도 '장'으로 바꿨다. 코메르송의 하인으로 배에 올랐다.

한번 배가 항구를 떠나면 되돌릴 수 없었다. 배 안에서 여자인 것이 드러나는 순간, 규정을 어긴 책임이 뒤따랐다.

에투알호는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로 향했다. 몇 달씩 이어지는 항해 내내, 장은 코메르송의 하인으로만 지냈다.

CH. 4

표본을 모은 손은 하녀의 것이었다

항해 중

코메르송은 뱃멀미와 다리의 종기로 자주 드러누웠다. 배가 뭍에 닿을 때마다 식물을 캐고, 무거운 표본 상자를 나르고, 말려 정리하는 일은 장이 떠맡았다.

항해에서 모은 식물 표본은 수천 점에 이르렀다. 부갱빌 항해가 남긴 가장 유명한 꽃은 탐험대장 부갱빌의 이름을 따 '부겐빌레아'로 불렸다. 표본을 캐 모은 손은 하인 장의 것이었다.

1768년 봄, 배가 타히티에 닿았다. 장이 뭍에 내리자, 타히티 사람들이 곧바로 여자라고 외쳤다. 부갱빌은 항해일지에 바레가 여자임이 드러난 날을 적었다.

CH. 5

해군이 제인 바레에게 연금을 주었다

1775년, 프랑스

제인 바레는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서 항해를 떠났다가, 1775년 무렵 배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세계를 한 바퀴 돈 첫 여자가 되었다.

“이 비범한 여인에게 해마다 200리브르의 연금을 지급한다.”
— 프랑스 해군성, 1785년

배에 여자를 들이지 않던 해군이, 세계를 돈 하녀의 이름 앞에 '비범한 여인'이라고 적었다.

— 끝 —
카톡 한 줄

세계일주 꽃 부겐빌레아, 이름은 탐험대장 건데 정작 표본을 캐 모은 손은 배에 타면 안 됐던 여자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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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