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약 대신 보라를 만들었다
1856년 부활절, 런던. 열여덟 살 소년이 약을 만들려다 비커에 보라색을 남겼다.
비커에 보라색이 남았다
실패한 약에서 나온 색
1856년 부활절, 런던. 열여덟 살 소년이 집 실험실에서 약을 만들고 있었다. 실험은 실패했다. 비커 바닥엔 검은 찌꺼기만 남았다.
퍼킨은 검은 찌꺼기를 알코올로 씻어냈다. 비커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보라색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색이었다.
보라는 왕의 색이었다
금보다 비싼 색
1856년, 보라색 옷은 왕과 황제의 것이었다. 보라 염료는 바다 달팽이에서 나왔다.
달팽이를 수만 마리 잡아 으깨야 옷 한 벌을 물들였다. 그래서 보라는 아무나 입지 못했다.
1856년 부활절, 런던 이스트엔드 케이블 스트리트. 열여덟 살 퍼킨은 집 꼭대기 층 실험실에 틀어박혔다. 방학이라 혼자 실험할 수 있는 때였다.
퍼킨의 목표는 보라색이 아니었다. 말라리아 약 키니네를 석탄 타르로 만드는 것이었다. 키니네는 나무껍질에서만 나왔고, 구하기 힘든 약이었다.
퍼킨이 학교를 떠났다
비커를 버리지 않았다
실패한 실험이었다. 보통은 비커를 비우고 다시 시작한다. 퍼킨은 보라색 물을 비우지 않았다.
퍼킨은 비단 조각을 담가 봤다. 색이 물에 빠지지 않았다. 햇빛에도 바래지 않았다. 염료였다.
열여덟 살 퍼킨이 결정을 내렸다. 왕립화학학교를 떠나 보라색을 직접 팔기로 했다.
스승 호프만은 반대했다. 유망한 제자가 학업을 버리고 사업에 뛰어드는 걸 만류했다. 퍼킨은 1856년, 보라색 염료 특허를 냈다.
퍼킨의 아버지와 형이 돈을 댔다. 1857년 봄, 런던 서쪽 그린포드에 공장이 올라갔다. 1857년 12월, 공장은 비단 염색공들에게 보라색을 보내기 시작했다.
여왕이 석탄 색을 입었다
금보다 비싸던 색이 흔해졌다
문제가 있었다. 보라는 왕의 색이었다. 왕이 아닌 사람이 왜 왕의 색을 사겠는가.
1857년, 프랑스 황후 외제니가 보라 드레스를 입었다. 1858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가 딸의 결혼식에 보라색을 입고 나타났다.
황후와 여왕이 입자 모두가 입고 싶어 했다. 런던에서는 보라색 유행을 두고 '보라색 홍역'이라는 농담이 돌았다.
금보다 비싸던 색이 석탄 찌꺼기에서 나왔다. 왕만 입던 색을 공장 노동자의 딸도 입게 됐다. 퍼킨이 실패한 약이, 퍼킨을 부자로 만들었다.
퍼킨은 서른여섯에 멈췄다
못 만든 약이 남긴 것
보라 공장이 유럽을 뒤덮은 지 16년, 1874년 퍼킨은 서른여섯에 공장을 팔았다. 다시 연구로 돌아갔다.
퍼킨이 키니네 대신 남긴 석탄 타르 화학은 염료 산업을 열었다. 염료 산업에서 훗날 제약 산업이 자랐다. 열여덟 살이 못 만든 약을, 석탄 타르가 만들어 냈다.
금보다 비싸던 보라색이 누구나 입는 색이 된 게, 말라리아 약 만들려다 실패한 열여덟 살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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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0)
- Mauveine — Wikipedia
- William Henry Perkin — Wikipedia
- The Story of Mauve — Science History Institute
- William Henry Perkin 1838-1907 — Science Museum Group
- Research Outreach — The mystery of the Victorian purple dye
- Molecule of the Month: Perkin's Mauveine — Imperial College
- Wedding dress of Victoria, Princess Royal — Wikipedia
- 290 Cable Street blue plaque (mauve invented here) — Shady Old Lady
- Perkin and Sons 1857-1874 — Science Museum Group
- The story of William Perkin, a Sudbury local hero — Brent Council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