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기업· 공유받은 글

젖을 먹은 아기들이 죽었다

1937년 명동, 한 의사가 젖 먹은 아기들이 죽는 걸 지켜봤다. 병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 스크롤
CH. 1

병에는 이름이 없었다

젖을 먹은 아기들이 죽었다

1937년, 명동 성모병원 소아과. 젊은 의사가 갓난아기들을 지켜봤다.

젖을 먹은 아기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어떤 병인지, 병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CH. 2

정재원은 답을 몰랐다

젖이 가장 좋다고 믿던 때

1930년대 사람들은 모유와 우유를 가장 좋은 먹을거리로 믿었다. 잘 먹이는 집일수록 아기에게 젖을 많이 물렸다.

정재원은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어린 나이에 의사가 됐다.

정재원이 의사가 된 나이
19세
최연소로 의사검정고시에 붙었다

1937년 명동 성모병원 소아과에 선 정재원은 번번이 졌다. 젖을 끊으면 아기가 굶고, 젖을 먹이면 아기가 죽었다.

CH. 3

정재원은 유학을 떠났다

마흔 넘어 다시 학생이 되다

답을 못 찾은 채 스무 해가 넘게 흘렀다. 정재원은 자리 잡은 병원을 두고 떠나기로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정재원은 영국 런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의사 일을 멈추고 만 5년을 다시 책 앞에 앉았다.

만 5년을 공부한 끝에, 정재원은 아기들을 죽인 병의 이름을 알아냈다. 범인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곳에 있었다.

CH. 4

범인은 젖 속에 있었다

가장 믿던 것이 범인이었다

병의 이름은 유당불내증이었다. 젖 속의 젖당을 삼키는 효소가 몸에 없는 아기들이 있었다.

아기들을 죽인 건 병균도 굶주림도 아니었다. 가장 좋다고 믿던 젖 속의 젖당이었다.

정재원은 젖당 없는 먹을거리를 찾다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 주던 콩국에는 젖당이 없었다.

귀국한 정재원은 콩을 갈아 모자란 영양을 채웠다. 1966년, 젖을 못 삼키는 아기를 위한 콩 치료식이 나왔다.

CH. 5

치료식이 음료가 되었다

아기의 약이 식탁에 올랐다

1973년, 정재원은 의사 가운을 벗고 정식품을 세웠다. 병원에서 건네던 콩 치료식을 공장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은 베지밀, 식물에서 짠 젖이라는 뜻이었다. 아기를 살리려던 약은 어느새 누구나 마시는 콩우유가 됐다.

정재원은 경쟁 회사도 두유를 만들 수 있게 거들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마실 수 있게.

— 끝 —
카톡 한 줄

콩우유 베지밀이, 알고 보면 엄마 젖을 못 삼키는 아기를 살리려 만든 치료식이었다고.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출처 (4)
내일, 또.